인플레이션은 세금이다
투표 없이, 고지서 없이, 당신의 재산을 가져가는 보이지 않는 세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바스티아(Frédéric Bastiat)는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을 제시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창문이 깨지면 유리장이에게 일거리가 생긴다. 보인다. 그 돈이 원래 구두나 책을 사는 데 쓰였을 거라는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만 보면 창문이 깨지는 게 경제에 이득인 것 같다.
인플레이션이 딱 그렇다. 보이는 것 — 오르는 물가, 오르는 자산 가격, “경기 부양"이라는 이름의 호황. 보이지 않는 것 — 저축에서 매년 새어나가는 구매력, 동의 없는 재산 이전,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치르는 대가.
작동 방식
세금은 최소한 투명하다. 법이 있고, 세율이 있고, 고지서가 온다. 얼마를 내는지 알고, 이론적으로는 선거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다르다. 법률도, 고지서도, 세율도 없다. 그런데 결과는 세금과 똑같다. 재산이 동의 없이 줄어든다.
과정은 이렇다. 정부가 적자를 메우려고 국채를 찍는다. 중앙은행이 새로 만든 돈으로 그 국채를 사준다. 정부는 이 돈으로 지출한다 — 아직 물가는 안 올랐다. 새 돈이 경제 전체로 퍼지면서 물가가 서서히 오른다. 당신이 가진 돈의 구매력이 줄어든다.
핵심은 타이밍이다. 정부는 새 돈의 첫 번째 사용자다. 물가가 오르기 전에 쓸 수 있다. 당신은 마지막이다. 물가가 이미 오른 뒤에야 영향을 받는다.
칸티용 효과
인플레이션의 부담은 균등하지 않다. 18세기 경제학자 리처드 칸티용이 관찰한 이 현상은 법정화폐 시스템의 가장 불공정한 측면이다.
이득을 보는 쪽이 있다. 정부는 새 돈을 처음 쓴다. 대형 금융기관은 중앙은행에서 직접 자금을 받는다. 자산 보유자의 부동산과 주식은 화폐 가치 하락보다 빠르게 오른다. 대규모 채무자는 빌린 돈의 실질 가치가 줄어드니 갚기가 쉬워진다.
손해를 보는 쪽도 있다. 임금 노동자의 월급은 항상 물가 뒤를 쫓는다. 저축자의 예금은 매년 구매력을 잃는다. 연금 수급자의 고정 수입은 점점 쪼그라든다.
자산이 없는 쪽에서 있는 쪽으로, 정치적 힘이 없는 쪽에서 있는 쪽으로 부가 이전된다. 역진세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2015년에 서울의 직장인이 매달 100만 원씩 저축했다고 하자. 10년간 1억 2,000만 원. 평균 연 2% 이자를 받으면 약 1억 3,300만 원이 된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는 약 25% 올랐다. 2015년에 1억 2,000만 원이면 되던 것이 2025년에는 1억 5,000만 원이 필요하다. 10년 동안 성실하게 저축한 결과, 실질 구매력은 오히려 줄었다.
부동산은 더 심하다. 2015년 서울 강남 평균 아파트 가격이 89억 원이었다. 2025년에는 1720억 원. 매달 100만 원씩 10년을 모은 사람이 10년 전보다 집에서 더 멀어졌다.
게으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하게 살고, 꾸준히 모은 사람이 시스템에 의해 벌을 받는 이야기다. 라면이 600원에서 1,300원으로, 커피가 3,000원에서 5,000원으로. 전부 올랐다. 임금은 그만큼 안 올랐다.
“2% 인플레이션은 건전하다”
주류 경제학자들과 중앙은행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한국은행, 연준, ECB 모두 2%를 물가안정 목표로 삼는다.
숫자를 돌려보자. 연 2%면 10년에 18% 감소. 30년이면 45%. 50년이면 64%. “안정적"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현실은, 평생 모은 저축이 은퇴할 때 절반 이상 날아간다는 것이다.
왜 0%가 아니라 2%인가. 주류 경제학의 답: 적당한 인플레이션이 있어야 사람들이 소비하고 경제가 돌아간다. 풀어쓰면, 사람들이 알아서 안 쓰니 저축 가치를 깎아서 억지로 쓰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경제학 에서 보면 근본부터 틀렸다.
물가 하락이 나쁜 게 아니다. 기술 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물가 하락이다. 컴퓨터, 스마트폰, TV —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데 산업은 성장한다. 1870~1900년 금본위제 시기 미국에서 물가가 완만히 하락하면서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인위적 인플레이션은 시간선호 를 왜곡한다. 건전한 화폐 시스템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저축과 소비를 선택한다. 인플레이션 시스템에서는 저축이 처벌이다. 빚을 내서 자산을 사거나, 당장 써버리는 게 합리적이 된다.
그리고 “2% 목표"가 실제로 달성되는 일도 드물다. 공식 CPI는 헤도닉 조정, 대체효과 반영 같은 통계적 보정을 거쳐 체감 물가보다 낮게 잡힌다. 공식 물가 3%라 해도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가보면 체감은 훨씬 크다.
재산권 침해
자유주의 의 관점에서 인플레이션은 재산권 침해다.
내가 일해서 번 돈은 내 재산이다. 그 가치를 내 동의 없이 깎는 것은 침해다. 바스티아가 말한 “합법적 약탈 (legal plunder)“의 가장 교묘한 형태다. 세금은 적어도 법에 명시되어 있고 국회 동의를 거친다. 인플레이션은 아무 절차도 없다.
케인즈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정부는 시민의 재산을 비밀리에, 눈에 띄지 않게 몰수할 수 있다. 백만 명 중 한 명도 이것을 진단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름을 딴 경제학이 바로 이 메커니즘을 정책 도구로 쓰고 있다.
비침해 원칙 에서 보면 명백한 침해다. 도둑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것과 다른 점은 딱 두 가지뿐이다. 정부가 합법적으로 한다는 것. 대부분이 그게 일어나는지조차 모른다는 것.
탈출구
인플레이션이 세금이라면, 비트코인은 그 세금에서 빠져나오는 문이다.
총 공급량 2,100만 개. 어떤 정부도 못 바꾼다. 코드로 강제되고 전 세계 수만 개 노드가 검증한다. 건전화폐 인 비트코인을 갖는다는 건, 누구의 허가 없이 자기 재산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원화를 들고 있으면 한국은행 정책에 묶인다. 달러를 들고 있으면 연준에 묶인다. 비트코인은 그 묶임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도구다.
보이지 않는 세금에는 보이지 않는 저항. 비트코인이 그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