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경제학 중급

왜 금리를 정부가 정하면 안 되는가

금리는 수억 명의 시간선호가 반영된 가격이다. 이것을 한 기관이 조작하면 어떻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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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는 가격이다

대부분 금리를 “돈 빌리는 비용” 정도로 생각한다. 한국은행이나 연준이 정하는 숫자.

오스트리아 경제학 에서 금리는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것이다. 사회 전체의 시간선호 가 반영된 가격이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금리는 내려간다. 현재 소비를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올라간다. 수억 명의 저축·소비 결정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연 금리(natural rate)가 형성되고, 이 숫자가 시장에 핵심 정보를 전달한다. 지금 사회에 실물 저축이 얼마나 있고, 어떤 규모의 투자가 가능한가.

시장이 정하면

사람들이 많이 저축하면 은행에 대출 자금이 쌓이고, 금리가 내려간다. 기업에 보내는 신호다 — 저축이 충분하니 장기 투자를 해도 된다.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개발한다. 이 투자는 실제 저축에 뒷받침되어 있으니 완성될 수 있다.

저축이 줄고 소비가 늘면 금리가 올라간다. 장기 투자를 자제하라는 신호다.

수억 명의 분산된 정보가 하나의 숫자로 집약되어 경제 전체의 자원 배분을 조율한다. 이것이 가격 시스템이다. 어떤 위원회도 이 정보를 대체할 수 없다.

중앙은행이 끼어들면

현실에서 금리는 중앙은행이 정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7명, 연준 FOMC 12명.

아무리 뛰어나도 수억 명의 시간선호를 대신 계산할 수 없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계산 문제 다. 분산된 지식은 중앙에서 수집이 불가능하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자연 수준보다 낮게 잡으면, 경기변동이론 이 설명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인위적으로 낮아진 금리가 “저축이 풍부하다"는 거짓 신호를 보낸다. 실제로는 저축이 늘지 않았다. 중앙은행이 만든 돈이 대출 시장에 풀린 것뿐이다. 거짓 신호에 속은 기업들이 장기 프로젝트에 뛰어든다. 부동산, 인프라, 스타트업 투자가 폭발한다. 겉으로는 호황이다. 기반이 실제 저축이 아니라 만들어낸 신용이라는 게 문제다.

그리고 현실이 돌아온다. 돈은 찍을 수 있지만 철강, 시멘트, 엔지니어는 못 찍는다. 프로젝트들이 자원을 놓고 경쟁하면서 비용이 치솟고, 인플레이션이 터진다. 결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되고, 그때서야 수많은 프로젝트가 애초에 수익성이 없었다는 게 드러난다. 불황이다.

2008년

2001년 닷컴 버블 이후 그린스펀의 연준이 금리를 6.5%에서 1%까지 내렸다. 값싼 돈이 부동산에 쏟아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폭증했고, 주택 가격은 2000~2006년 사이 85% 올랐다.

2004년부터 금리를 올리자 전부 무너졌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세계 금융 시스템 붕괴 직전, 수백만 명이 집과 저축을 잃었다.

이것을 “시장의 실패"라고 부르는 건, 방화범을 보고 “불의 실패"라고 하는 것과 같다.

2020~2022년

코로나 대응으로 연준이 금리를 거의 0%까지 내리고 4.8조 달러의 양적완화를 쏟았다. 한국은행도 사상 최저 0.5%.

결과는 예정대로였다. 미국 집값 40% 상승(2020~2022). 한국 수도권 아파트 30% 이상. 주식 사상 최고.

그리고 인플레이션. 미국 CPI가 2022년 6월 9.1%, 한국은 2022년 7월 6.3%로 24년 만의 최고치. 연준이 0%에서 5.5%로 급하게 올렸고, 한국은행도 0.5%에서 3.5%로 따라갔다. 경기 둔화, 부동산 냉각, 이자 부담 폭증. 오스트리아 경기변동이론의 교과서적 전개다.

한국의 부동산

한국은 금리 조작의 결과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나라다.

2008년 이후 장기 저금리 기조 아래 가계부채가 폭발했고,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갔다. 2024년 기준 가계부채 총액 약 1,900조 원, GDP 대비 100%. 세계 최고 수준. 서울 평균 아파트 12억 원, 가구소득 대비 15~18배. 뉴욕 9배, 도쿄 11배와 비교하면 비정상적이다.

“영끌"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한다는 뜻이다. 개인의 탐욕이 아니다. 금리 조작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다. 저금리로 빚내서 집 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시스템의 산물이다.

좀비 기업

인위적 저금리의 또 다른 결과. 좀비 기업이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다. 정상 금리였으면 퇴출됐을 기업들이 싼 이자 덕에 버틴다.

BIS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 좀비 기업 비율이 1980년대 2%에서 2020년대 15~20%로 늘었다. 한국은행 보고서 기준,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곳이 40%에 달하는 해도 있었다.

좀비 기업은 노동과 자본을 비생산적으로 묶어둔다. 이 자원이 더 나은 곳으로 가지 못하면서 경제 전체가 둔해진다. 잘못된 투자(malinvestment)의 실체다.

중앙은행 없이

“아무도 금리를 안 정하면 혼란 아닌가?”

아무도 안 정하는 게 아니다. 모두가 같이 정하는 것이다. 수억 명이 각자의 시간선호에 따라 저축하고 빌리면서 금리가 나온다. 언어를 아무도 설계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것처럼. 자생적 질서 다.

자유 시장 금리에서는 투자가 실물 저축에 뒷받침되니 거짓 호황이 없고, 파괴적 불황도 없다. 좀비 기업이 퇴출되어 자원이 생산적으로 돌아간다. 정부가 무한히 빌릴 수 없으니 재정 규율이 유지된다.

1870~1914년 고전적 금본위제 시기에도 경기변동은 있었다. 하지만 진폭은 법정화폐 시대보다 작았고, 원인은 대부분 부분지급준비금제와 정부 개입이었다.

비트코인 표준

비트코인 세상에서 금리는 시장이 정한다. 건전화폐 시스템에서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신용을 팽창시킬 수 없다. 대출 자금은 실제 저축에서만 나온다. 금리가 사회의 진짜 시간선호를 반영한다.

금리를 몇 명이 정하는 현 시스템은 수십 년짜리 실험이다. 결과는 나왔다. 반복되는 버블과 붕괴, 만성적 인플레이션, 불평등 심화, 지속 불가능한 부채. 금리는 가격이다. 가격은 시장이 정해야 한다. 석유 가격을 한 기관이 정하면 안 되듯, 시간의 가격도 한 기관이 정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