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에너지 낭비인가
비트코인의 에너지 소비를 비판하기 전에, 에너지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다”
비트코인을 비판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다. 네트워크 연간 전력 소비량 약 100~150TWh(추정치는 방법론과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다), 노르웨이 한 나라 수준. “비트코인 거래 한 건에 미국 가정 한 달 전기가 든다” 같은 헤드라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비판의 핵심적인 오류는, 비트코인의 에너지 소비가 거래 건수가 아니라 네트워크 보안에 비례한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다. 거래가 1건이든 1만 건이든 같은 블록에 담기며, 에너지 소비는 동일하다.
이 비판을 진지하게 하려면, 비교 대상을 제대로 놓아야 한다.
비교를 공정하게
글로벌 은행 시스템 — 지점, ATM, 데이터센터, 사무실, 직원들의 출퇴근 — 의 연간 에너지 소비는 약 260TWh로 추정된다(갤럭시 디지털 리서치, 2021). (다만 이 수치는 비트코인 옹호적 관점의 보고서에서 나온 것이므로 독립적 검증이 필요하다) 비트코인의 1.7배다. 그런데 은행은 전 세계 인구 중 일부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한다. 14억 명의 성인이 은행 계좌조차 없다. 비트코인은 인터넷만 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금 채굴은 연간 약 130TWh(같은 보고서 추정). 운송, 보관, 보안까지 더하면 비트코인과 비슷하거나 더 크다. 그런데 “금 채굴은 에너지 낭비”라는 말은 아무도 안 한다. 금의 가치를 인정하니까. 결국 “낭비”냐 아니냐는 결과물에 가치를 부여하느냐의 문제다.
가장 안 하는 비교가 하나 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미군. 전 세계 750개 이상의 해외 군사기지, 연간 국방예산 8,000억 달러 이상. 미 국방부는 단일 기관으로 세계 최대의 화석연료 소비자다. 연간 약 8,000~9,000만 배럴의 석유를 태운다. 미군의 존재 목적이 달러 패권 유지만은 아니다. 그러나 기축통화 지위 유지에 군사적 영향력이 기여한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이 에너지 상당 부분이 달러 기반 석유 무역 체제, 페트로달러를 유지하는 데 들어간다.
비트코인은 탱크 없이, 항공모함 없이, 수학과 전기만으로 통화 시스템을 지킨다.
작업증명이 하는 일
작업증명은 거래 처리가 아니다. 시가총액 1조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키는 보안 체계다. 네트워크를 공격하려면 정직한 채굴자들이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리 법칙이 비트코인을 보호한다.
기존 화폐 시스템은 군대, 경찰, 법원, 감옥으로 유지된다. 비트코인은 열역학으로 유지된다.
좌초 에너지
비트코인 채굴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좌초 에너지(stranded energy) 활용이다.
전 세계 석유 시추 현장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천연가스를 그냥 태워버리는 경우가 많다. 파이프라인을 깔아 운송하는 게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매년 약 1,500억 세제곱미터가 허공에 날아간다.
비트코인 채굴자들이 이 버려지는 가스로 발전기를 돌린다. 그냥 태우면 미연소 메탄(20년 기준 온실효과가 CO2의 80배)이 나오는데, 발전기로 완전 연소시키면 오히려 환경에 더 낫다. 크루소 에너지(Crusoe Energy)가 이미 이 모델로 운영 중이다.
재생에너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수력, 풍력, 태양광은 수요와 공급의 타이밍이 안 맞는 문제가 있다. 바람이 많이 불 때 전기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저장이 어려우니 잉여 전력은 버려진다.
채굴기는 전력이 남을 때 돌리고, 수요가 높을 때 끄면 된다. 텍사스에서는 비트코인 채굴 시설들이 여름 피크 시간대에 자발적으로 가동을 중단해 전력망 안정에 기여한다. ERCOT 데이터 기준 2023년 여름 피크 때 최대 가용 용량의 95% 이상을 즉시 줄일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파라과이에서 채굴이 활발한 이유가 이거다. 잉여 수력 에너지를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 BMC 2024년 보고서 기준 비트코인 채굴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약 60%. (다만 BMC 보고서는 자발적 참여 기반 설문이며, 참여하지 않는 채굴자들이 제외되어 실제 비율은 이보다 낮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주요 산업보다 높다.
에너지 사용 ≠ 에너지 낭비
크리스마스 조명 연간 6.6TWh. 영상 스트리밍 94TWh. 미국 건조기 60TWh. 이것들을 “낭비”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가치를 제공하니까.
그러면 검열 불가능하고, 압수 불가능하고, 공급이 고정된 화폐 시스템을 지키는 건?
터키, 아르헨티나, 레바논, 나이지리아. 이 나라 사람들에게 비트코인은 투기가 아니라 생존이다. 정부가 화폐를 망가뜨리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 낭비”라고 말하는 건, 선진국에서나 할 수 있는 여유다.
누가 “낭비”를 정하는가
“비트코인은 에너지 낭비”의 이면에는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 누군가가 어떤 에너지 사용은 괜찮고 어떤 것은 낭비인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자유 시장에서 에너지의 가치는 가격으로 결정된다. 채굴자는 전기를 산다. 대가를 지불하고, 네트워크 보안을 제공한다. 강제가 없는 자발적 거래다.
어떤 에너지 사용이 “가치 있는지”를 정부나 언론이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생적 질서를 부정하고 중앙계획을 지지하는 것과 같다. “낭비가 아닌” 에너지 사용 목록을 누가 만들 건가. 경제계산 문제와 직결되는 이야기다. 수억 명의 필요와 가치를 어떤 기관도 대신 판단할 수 없다.
환경 논의에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ASIC 채굴기의 전자 폐기물 문제다. 채굴기의 평균 수명은 3~5년이며, 효율이 떨어진 장비는 폐기된다. 이는 비트코인 생태계가 해결해야 할 환경 과제 중 하나다.
이더리움은 2022년 지분증명(PoS)으로 전환하여 에너지 소비를 99% 이상 줄였다. 그러나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물리적 에너지 투입이야말로 디지털 자산에 현실 세계의 비용을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
비트코인은 에너지를 쓴다. 맞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안전한 화폐 시스템을 유지하는 비용이다. 법정화폐 시스템이 전 세계에 부과하는 비용에 비하면, 전 세계 에너지의 0.1%는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