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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예금과 무엇이 다른가

1원에 고정된 코인이 실제로 무엇인지, 100% 준비자산과 예금자보호가 어떻게 다른지, 발행 주체를 놓고 한국은행과 금융위가 갈린 이유, 그리고 2026년 9월 현재 입법이 서 있는 자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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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들린다.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짜고 상표를 출원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국회에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곧 올라온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1원에 고정된 코인"이라는 흔한 설명은 시세를 말할 뿐 성질을 말하지 않는다.

성질을 말하면 이렇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원화가 아니다. 원화를 주겠다는 민간 발행자의 약속이다. 이 한 줄에서 이어지는 질문들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전부다. 누가 그 약속을 할 자격이 있는가, 약속이 깨지면 누가 물어 주는가, 그리고 약속을 지키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 값을 1원에 붙들어 두는가

스테이블코인이 가격을 유지하는 방식은 크게 셋이다.

준비자산 담보형. 발행한 만큼 실제 자산을 따로 쌓아 두고, 들고 오면 액면가로 바꿔 준다. 테더(USDT)와 USDC가 여기 속하고, 지금 각국이 제도화하려는 대상도 이것뿐이다.

암호자산 초과담보형. 변동성 있는 자산을 액면보다 많이 잡아 두고 발행한다. 담보 가치가 떨어지면 자동 청산이 돈다.

알고리즘형. 자산을 쌓지 않고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규칙만으로 가격을 맞춘다. 2022년 5월 테라(UST)와 루나가 며칠 만에 사실상 0으로 간 것이 이 방식이다. 400억 달러 규모가 증발한 이 사건 이후 알고리즘형은 제도권 논의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시장은 달러가 압도한다. 2026년 4월 기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은 3,000억 달러대이고, 그중 테더가 약 3분의 2, USDC가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 각국이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을 서두르는 동기의 절반은 여기 있다. 자국 안에서 결제와 송금이 달러 표시 토큰으로 돌기 시작하면, 통화주권 문제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점유율 문제로 바뀌기 때문이다.

예금과 무엇이 다른가

화면에 찍힌 숫자만 보면 은행 앱의 잔액과 구별이 안 된다. 원화로 표시되고, 보내면 상대에게 간다. 차이는 그 숫자를 떠받치는 구조에 있고, 세 가지가 갈린다.

첫째, 준비의 방식이다. 은행은 부분지급준비로 굴러간다. 받은 예금의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를 대출로 내보내며, 그 과정에서 통화량이 늘어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그럴 수 없다. 논의 중인 정부안은 발행액의 100% 이상을 은행 예금이나 국채로 예치하도록 한다. 신용창조를 하지 않는 대신, 준비자산에서 나오는 이자가 발행사의 주된 수익이 된다.

둘째, 보호의 유무다. 은행 예금은 예금자보호제도에 따라 1억원까지 보호받는다. 스테이블코인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 대신 이용자에게 발행사를 상대로 한 상환청구권을 주고, 발행사가 망하면 예치된 준비자산에서 회수하도록 설계한다. 법으로 마련된 보험과 한 회사의 자산에 대한 청구권은 전혀 다른 종류의 안전장치다.

셋째, 이자다. 정부안은 이용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이자를 붙이면 예금과 경쟁하게 되고, 그 순간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가 대출 재원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셋을 합치면 스테이블코인은 예금보다 은행권에 가깝다. 준비자산을 쌓아 두고 태환을 약속하는 청구권 증서, 즉 금 태환 시대의 은행권과 구조가 같다. 이캐시가 비트코인 준비금 위에서 같은 구조를 다시 만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은행권의 약점도 함께 물려받는다. 준비금이 100%라고 해서 액면가가 곧 시장가인 것은 아니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이 무너졌을 때 USDC는 0.88달러까지 떨어졌다. 준비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준비금의 일부가 하필 그 은행에 묶여 있어서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준비의 양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그 준비에 손이 닿느냐다. 게다가 인출은 창구에 줄을 서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코인런은 뱅크런보다 빠르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진짜 쟁점은 기술이 아니라 발행권

한국의 논의에서 이미 합의된 부분은 의외로 넓다.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자만 발행할 수 있고, 발행액의 100% 이상을 준비자산으로 예치하고, 이용자에게 이자를 주지 않고, 상환청구권과 공시 의무를 둔다. 여기까지는 이견이 크지 않다.

막힌 곳은 하나다. 누가 발행할 수 있는가.

한국은행의 입장은 은행이 지분 51% 이상을 갖고 경영권을 쥔 컨소시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업계는 핀테크를 비롯한 비은행의 참여 폭을 넓히자는 쪽이다. 발행사 자본금 요건도 5억원과 250억원 사이에서 벌어져 있고, 거래소가 발행사 지분을 얼마나 가질 수 있는지도 미정이다. 이 견해차 때문에 법안 제출이 반년 넘게 밀렸다.

한국은행이 2025년 10월 낸 보고서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방안'은 위험 요인을 일곱 가지로 정리한다. 디페깅, 코인런, 예금자보호 부재, 금산분리 원칙 훼손, 외환규제 우회, 통화정책 유효성 저하, 은행 자금중개 기능 약화. 목록이 길지만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 화폐를 발행하는 기능을 국가가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허락할 것인가.

이 질문에 정답이 없다는 점은 짚고 갈 만하다. 은행으로 좁히면 준비자산 관리와 금융 안정에는 유리하지만, 은행이 자기 예금을 잠식하는 상품을 얼마나 열심히 만들지는 의문이다. 넓히면 경쟁과 혁신이 생기는 대신 감독의 난이도가 올라간다. 어느 쪽을 고르든 대가가 있고, 지금 국회로 가는 것은 그 대가의 선택이다.

2026년 9월, 법은 어디까지 왔나

한국의 디지털자산 입법은 2단계로 설계됐다. 1단계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2024년 7월 시행돼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를 담았다. 2단계가 발행과 유통 전반을 다루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여기 들어간다.

2026년 9월 9일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정부안은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 않았다. 정무위원장이 정부 의견을 반영한 통합안을 9월 중 대표발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고, 추석 전 발의가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9월을 넘기면 연내 처리가 어렵다고 본다. 10월 국정감사와 11월부터의 예산안 심사가 국회 일정을 채우기 때문이다.

법이 통과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결제와 송금에 쓰이려면 전자금융거래법, 특정금융정보법, 외국환거래법이 함께 손질돼야 한다. 특히 외국환거래법은 국경을 넘는 원화 토큰이라는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 만들어진 법이다.

한편 은행권은 법이 나오기 전부터 움직였다. 여러 금융지주가 공동 발행 컨소시엄을 논의하고 있고, 상표 출원과 송금 기술 검증을 마친 곳도 있다. 발행 주체가 은행 중심으로 정리될 가능성에 미리 자리를 잡아 두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확정된 법률이 아니라 진행 중인 논의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이 글에 적힌 요건과 숫자는 국회 심사에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해외는 어디에서 갈렸나

미국은 2025년 7월 제정된 GENIUS법으로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의 틀을 잡았다. 은행과 비은행 모두 발행할 수 있되 감독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준비자산은 현금과 단기 국채 같은 고유동성 자산으로 제한된다. 눈여겨볼 것은 방향이다. 미국은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리테일 CBDC에는 선을 긋고,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쪽을 택했다.

EU는 미카(MiCA)로 자산준거토큰과 전자화폐토큰을 나눠 규율하며, 인가받은 기관만 발행할 수 있게 했다. 회원국별 경과 유예는 2026년 7월 1일자로 끝났다.

일본은 2023년 6월 시행된 개정 자금결제법에서 스테이블코인(전자결제수단)의 발행자를 은행, 신탁회사, 자금이동업자로 한정했다. 발행 주체를 면허업자로 좁힌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한국은행이 주장하는 형태에 가깝다.

세 사례를 놓고 보면 한국의 쟁점이 어디에 있는지가 선명해진다. 인가제와 완전 준비는 이미 국제 표준에 가깝다. 한국만의 갈림길은 그 인가를 은행에 얼마나 몰아줄 것이냐다.

이용자에게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나

기대되는 쪽은 분명하다. 은행 영업시간과 무관한 24시간 이체, 결제 조건을 코드로 걸어 두는 프로그래머블 결제, 그리고 지금은 며칠씩 걸리는 해외 송금의 단축이다.

달라지지 않는 쪽도 그만큼 분명하다.

원화의 성질은 그대로 따라온다. 원화가 구매력을 잃는 속도로 그 코인도 구매력을 잃는다. 화폐 가치의 희석은 발행 형식이 종이든 토큰이든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

동결과 압수도 그대로 따라온다. 발행사는 특정 주소의 잔액을 동결할 수 있고,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이미 수사기관 요청에 따라 그렇게 하고 있다. 인가받은 발행사가 국내법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예외가 아니라 설계의 일부다.

신원 확인도 그대로다. 거래소를 통해 원화를 넣고 빼는 한 KYC와 트래블룰은 똑같이 적용된다.

즉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원화의 이동 방식을 바꾸는 물건이지, 원화의 성질을 바꾸는 물건이 아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코인이니까 자유롭겠지"라는 잘못된 기대를 하게 된다.

비트코인과 나란히 놓으면

같은 지갑에 담긴다고 해서 같은 종류의 물건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자가 있다. 그 발행자가 준비금을 제대로 들고 있는지, 규제를 지키는지, 압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가치가 달려 있다. 잘 만들어진 결제 레일이지만, 신뢰해야 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발행자가 없다. 그래서 가격이 흔들리고, 그래서 아무도 동결할 수 없다. 스테이블코인이 얻은 안정성과 비트코인이 얻은 무허가성은 같은 자리에서 나온 서로 다른 선택이다.

용도가 갈리는 지점도 여기다. 다음 달에 쓸 돈을 오늘 밤에 보내야 한다면 스테이블코인이 낫다. 10년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할 돈이라면, 그 돈을 발행하고 동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맡길 이유가 없다. 자기 보관이 답이 되는 자리는 후자다.

정리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원화의 디지털 사본이 아니라 원화를 주겠다는 인가받은 민간의 약속이다. 예금과 달리 100% 준비를 요구받지만 예금자보호는 받지 못하고, 은행권과 마찬가지로 발행자를 신뢰해야 한다.

2026년 9월 현재 남은 쟁점은 기술이 아니라 권한이다. 화폐를 발행하는 기능을 은행에 묶어 둘 것인가, 인가라는 조건 아래 열 것인가. 이 결정이 앞으로 한국에서 원화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다닐지를 정한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한 가지는 그대로다. 발행자가 있는 돈은 발행자의 사정을 따라간다.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자리에서는 편리한 도구이고, 문제가 되는 자리에서는 발행자가 없는 돈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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