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에 다섯 사람이 답한다
금강경오가해는 부대사의 송, 혜능의 구결, 종밀의 찬요, 야보의 착어와 송, 종경의 제강을 같은 경문 아래 나란히 놓는다. 다섯 목소리가 어떻게 갈리는지, 조선 초 함허가 왜 여섯 번째 목소리를 더했는지, 그리고 그 책이 세종의 명으로 한글본이 된 경위를 풀어낸다.
주석이 2,000종 넘게 쌓인 경
구마라습이 5세기 초에 옮긴 『금강반야바라밀경』은 5,000자 남짓한 짧은 경이다. 그런데 이 경에 붙은 주석은 중국과 한국과 일본을 합해 2,000종을 넘는다고 기록된다. 짧은 경일수록 말이 압축되어 있어 풀 자리가 많다.
주석이 그만큼 쌓이면 다음 세대가 할 일은 정리다. 가장 옳은 주석을 골라 세우거나, 여러 주석을 녹여 하나의 설명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는 둘 다 하지 않았다. 다섯 사람의 주석을 고르지도 녹이지도 않고, 같은 경문 아래 그대로 나란히 세웠다.
경을 32분으로 나눈 것은 양나라 소명태자의 분장을 따랐다. 그 32분의 경문을 조각으로 끊고, 조각마다 다섯 사람의 말을 차례로 붙인 편집이다. 누가 언제 이렇게 묶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다섯 가운데 둘이 송나라 사람이므로 송대에 편집된 것으로 본다.
다섯 사람
부대사의 송
부대사(傅大士, 497~569)는 양나라 사람이다. 속성이 부(傅), 이름이 흡(翕)이고, 출가하지 않은 재가자였다. 쌍림수 아래 암자를 짓고 살며 농사와 품팔이로 생계를 잇고 밤에 법을 설했다. 제자들 사이에서 그를 미륵의 응신이라 부르는 말이 돌았다.
그의 주석은 5언 게송이다. 경문 한 대목을 여덟 구 안에 요약하는데, 설명이 아니라 압축이어서 외우기 좋다. 오가해에 실린 부대사의 송은 70수인데 그 가운데 실제로 부대사가 지은 것은 49수라는 견해가 있다.
혜능의 구결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출가했고 다시 그 경의 한 구절에서 깨쳤다고 전해지는 사람이 육조 혜능(慧能, 638~713)이다. 경을 읽다가 삶이 바뀐 사람이 그 경을 풀어 놓은 것이 『금강경해의』, 곧 구결(口訣)이다.
문장이 눈에 띄게 쉽다. 꾸밈이 없고 교학 용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색신과 법신을 가르는 대목에서도 사대가 모여 부모가 낳은 몸이 색신이고 모양도 빛깔도 없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법신이라고, 들은 사람이 바로 알아듣게 말한다.
종밀의 찬요
규봉 종밀(宗密, 780~841)의 『금강반야경소론찬요』는 다섯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논리적이다. 종밀은 선종의 계보에 서 있으면서 화엄의 교학을 함께 이은 사람이라, 주석도 그 두 성격을 다 가진다.
그는 경을 과단(科段)으로 쪼갠다. 이 대목은 의심을 일으킨 원인을 들어 묻는 자리, 이 대목은 부처의 몸이 모양 없음을 도장 찍는 자리라고 번호를 매겨 가며 전체를 뼈대로 세운다. 그리고 다른 주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앞에서는 부처의 몸이 모양 아님을 깨달았던 수보리가 왜 여기서는 모양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는가를 두고, 기존의 두 소(疏)가 다 틀렸다고 잘라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야보의 착어와 송
야보 도천(冶父道川)은 남송 사람이다. 속성이 적(狄), 이름이 삼(三)이고 군에서 직책을 맡고 있다가 도겸에게서 도천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정인계성의 법을 이어 임제종의 6세가 된다.
그의 주석은 두 부분이다. 경문 아래 한마디 던지는 착어(著語)와 네 구 게송이다. 착어는 설명이 아니라 되치기다. 모양 있는 것은 다 헛되다는 구절 아래에 그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되묻는다. 지금 걷고 머물고 앉고 눕는 이것은 무슨 모양이냐고 물은 뒤에 졸지 말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종경의 제강
예장 종경(宗鏡)도 송나라 사람인데 생몰과 이력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금강경제강』은 법문의 말투를 쓴다. 경의 큰 줄기를 먼저 세우고, 비유로 길게 풀고, 마지막에 게송으로 닫는다.
경을 길(徑)이라 읽는 대목이 그의 성격을 보여 준다. 부처가 이 길을 열어 주지 않았으면 뒷사람이 어디로 발을 옮기겠느냐고 물어 놓고는, 그 첫 걸음을 어떻게 떼겠는가를 도리어 듣는 사람에게 돌려준다.
같은 구절, 다섯 개의 답
제5 여리실견분의 마지막 구절은 금강경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대목이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모양 있는 것은 다 헛되다.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을 보면 바로 여래를 본다.
오가해는 이 한 구절 아래에 다섯 사람을 차례로 앉힌다.
종밀은 먼저 이 자리가 경의 구조에서 어디인지 이름을 붙인다. 부처의 몸이 모양 없음을 도장 찍는 넷째 자리다. 그러고는 부처의 몸만 모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범부와 성인, 의보와 정보의 온갖 지어진 모양이 다 헛되다고 범위를 넓히고, 기신론과 유식의 문장을 끌어와 근거를 댄다. 모양이 헛되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모양 없는 부처를 따로 찾을까 염려한다는 경계까지 붙는다.
혜능은 같은 자리에서 한 문장으로 끝낸다. 여래가 법신을 드러내려고 모든 모양이 헛되다고 말한 것이니, 모든 모양이 헛되어 실답지 않음을 깨달으면 그것이 곧 여래의 모양 없는 이치를 보는 것이다.
부대사는 게송으로 답한다.
如來擧身相 爲順世間情 恐人生斷見 權且立虛名
여래가 몸의 모양을 든 것은 세간의 정을 따른 것이다. 사람들이 끊어졌다는 견해를 낼까 염려해 방편으로 빈 이름을 세웠다.
야보는 설명을 하지 않는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던진 다음, 게송으로 양쪽을 다 막는다.
有相有求俱是妄 無形無見墮偏枯
모양이 있다 하고 구하는 바가 있으면 다 망이고, 모양도 없고 볼 것도 없다 하면 한쪽으로 말라 떨어진다.
종경은 그림을 그린다. 부처의 몸이 바다 위 외로운 봉우리처럼 높고 그 상호가 별 가운데 둥근 달처럼 밝지만 끝내 참이 아니라 하고, 달 하나가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고 모든 물의 달이 달 하나에 거두어진다는 구절로 받는다. 그의 게송은 이렇게 닫힌다.
千江有水千江月 萬里無雲萬里天
천 개의 강에 물이 있으면 천 개의 강에 달이 있고, 만 리에 구름이 없으면 만 리가 그대로 하늘이다.
같은 구절을 두고 논변과 직설과 압축과 되치기와 노래가 한 지면에 나란히 있다. 다섯이 모두 모이는 구절도 있고 둘만 붙는 구절도 있어서, 어느 구절에 누가 입을 열었는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대목의 성격이 짚인다.
정리하지 않은 것이 편집이다
주석을 하나로 정리하지 않은 편집에는 대가가 따른다. 독자가 스스로 갈라 읽어야 한다.
그 대신 얻는 것이 있다. 종밀을 읽는 동안 독자는 경의 뜻을 붙잡는 훈련을 한다. 곧바로 이어지는 야보는 붙잡은 것을 내려놓게 만든다. 교학의 힘과 선의 활구가 같은 지면에서 번갈아 작동하고, 그 교대가 금강경이 말하는 내용과 같은 모양을 이룬다. 뗏목을 붙잡되 강을 건넌 뒤에는 뗏목마저 놓으라는 것이 이 경의 가르침이다.
한 사람이 한 구절을 여러 관점에서 읽어 내는 방식은 이미 있었다. 천태 지의가 경문 하나를 네 관점에서 거듭 읽은 법화문구가 그것이다. 오가해는 그 일을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하지 않고 다섯 사람의 목소리로 벌여 놓았다. 층위를 나눈 것이 아니라 인물을 나란히 세운 차이다.
여섯 번째 목소리
조선 초의 승려 함허 득통 기화(涵虛得通己和, 1376~1433)는 이 책을 강의했다. 그리고 다섯 주석의 어려운 대목마다 자기 풀이를 달았는데 그것이 설의(說誼)다. 1417년 무렵의 일이고, 오가해와 설의를 한 책으로 합해 간행한 것은 1457년이다.
그가 한 일은 풀이만이 아니다. 유통되던 판본의 오자와 탈자, 중복된 글자, 앞뒤가 바뀐 문장을 바로잡아 교정본을 만들었다. 조선의 강원에서 쓰던 판본들이 목판본과 다른 곳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서(序)는 이렇게 시작한다.
有一物於此 絕名相 貫古今 處一塵圍六合
여기 한 물건이 있다. 이름과 모양이 끊어졌으되 고금을 꿰뚫고, 한 티끌에 있으면서 위아래 사방을 에워싼다.
설의는 그 한 물건이 무슨 물건이냐고 되물으며 시작한다. 미혹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어서 범부니 성인이니 부를 수 없고, 나도 남도 없어 자타로 이름 붙일 수 없으니 다만 한 물건이라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남악 회양의 말을 끌어와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다고 자기 말을 다시 거둔다.
서의 뒷부분에서 그는 다섯 사람을 이름으로 불러 모은다. 대감 혜능과 규봉 종밀, 야보 도천과 부대사와 종경, 이 다섯이 모두 사람과 하늘이 받드는 이들이라고 한 다음, 이들이 경에 주석을 붙인 일을 이렇게 평한다.
豈是彫文喪德 可謂錦上添華
어찌 글을 새겨 덕을 잃은 것이겠는가. 비단 위에 꽃을 더한 것이라 할 만하다.
옥에 흠이 없는데 무늬를 새기면 옥의 덕을 오히려 잃는다. 주석은 그 반대라는 것이 함허의 판단이다. 주석 다섯 겹이 경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경의 말을 더 정밀하게, 경의 뜻을 더 밝게 만든다고 보았다.
세종이 남긴 유언
이 책은 조선에서 한 번 더 층을 얻는다.
세종은 1448년에 오가해 가운데 야보의 송과 종경의 제강, 함허의 설의를 우리말로 옮기라 명했다. 세자와 수양대군이 초고를 만들었으나 교정을 마치지 못한 채 세종이 승하했고, 문종과 세조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세조의 비 자성대왕대비가 학조에게 교정을 맡겨 1482년(성종 13)에 간행한 것이 『금강경삼가해』다. 을해자 활자본 5권 5책, 내수사에서 300부를 찍었다.
다섯 가운데 셋을 골랐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가장 길고 논리적인 종밀의 찬요가 빠지고, 야보와 종경, 곧 선의 활구 쪽 둘과 조선 사람 함허가 남았다. 경을 논증으로 풀어 주는 쪽보다 한 소리로 되치는 쪽을 먼저 우리말로 옮긴 셈이다.
『금강경삼가해』는 지금 국어사 자료로도 읽힌다. 동국정운의 한자음을 달고 한글 구결과 쌍행 언해를 함께 쓴 15세기 문헌이라, 훈민정음 초기의 표기를 살피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 주석을 나란히 두겠다는 편집이 한문 안에서 시작되어 한글까지 한 줄 더 얹은 것이다.
지금 읽는 사람에게
오가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은 전문가의 몫이다. 다만 이 책의 독법 하나는 가져올 수 있다.
한 구절을 만나면 답을 하나로 모으려는 충동을 참는 것이다. 이 구절을 논리로 세우면 어떻게 되는가, 쉬운 말로 옮기면 무엇이 남는가, 여덟 구로 줄이면 무엇이 버려지는가, 한마디로 되치면 무엇이 드러나는가, 노래로 부르면 어디가 남는가. 다섯을 겹쳐 놓으면 어느 하나로 읽었을 때보다 구절이 두꺼워진다.
야보의 착어가 설명을 끊고 되묻는 방식은 뒷날 화두 하나를 들고 앉는 간화선과 결이 같다. 그가 임제종의 법을 이었으므로 우연도 아니다. 논증으로 얻은 것을 한마디가 거두어 가는 자리, 오가해는 그 자리를 편집으로 만들어 놓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