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쓴 세 게송
혜능의 게송으로 가장 널리 외는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구절이 가장 오래된 돈황 사본의 육조단경에는 없다. 돈황본과 혜흔본, 종보본의 게송을 원문으로 나란히 놓고, 남돈북점의 구도와 정혜·무념의 가르침, 그리고 조계라는 이름과 지눌, 덕이본과 언해로 이어진 한국의 단경을 풀어낸다.
벽 앞의 이야기
황매의 오조 홍인(弘忍)이 문하의 승려들을 불러 모았다. 각자 깨달은 바를 게송 한 수로 지어 오라, 뜻을 알아본 사람에게 가사와 법을 전해 여섯 번째 조사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문인들은 지을 생각을 접었다. 교수사인 신수(神秀)가 있으니 그가 법을 얻으면 따르면 된다고 여겼다.
신수는 망설였다. 게송을 올리지 않으면 스승이 자기 견해의 깊이를 알 길이 없고, 올리면 조사 자리를 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밤 삼경에 아무도 모르게 남쪽 회랑 가운데 벽에 촛불을 들고 게송을 적었다. 며칠 뒤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던 행자 혜능(惠能)이 동자가 외는 그 게송을 듣고 벽 앞으로 갔다. 글을 몰라 남에게 읽어 달라 하고, 자기 게송도 남의 손을 빌려 벽에 적게 했다.
선종에서 가장 많이 되풀이된 장면이다. 신수와 혜능이 게송 한 수씩을 벽에 남겨 겨루었고, 혜능이 이겨 법을 받았다. 이 장면을 전하는 책이 혜능의 설법과 생애를 엮은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사본을 펴 보면 벽에 적힌 게송은 두 수가 아니라 세 수다.
신수의 게송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돈황 사본은 제목부터 길다. 『남종돈교최상대승마하반야바라밀경육조혜능대사어소주대범사시법단경(南宗頓教最上大乘摩訶般若波羅蜜經六祖惠能大師於韶州大梵寺施法壇經)』. 소주 대범사에서 혜능이 법을 베푼 기록이고, 문인 법해(法海)가 모아 적었다고 밝힌다. 대정신수대장경에 2007번으로 실린 것이 이 사본이다.
신수의 게송은 이렇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使有塵埃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이 있지 않게 하라.
홍인은 이 게송을 보고 회랑 벽에 그리려던 능가경 변상도를 그리지 않기로 한다. 화공에게 금강경의 「무릇 모양 있는 것은 다 헛되다」를 들어 돌려보내고, 이 게송을 남겨 사람들이 외게 했다. 이대로 닦으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수를 따로 불러서는 견해가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들어오지 못했다고 말한다.
가장 오래된 사본의 혜능
돈황본에서 혜능은 서쪽 벽에 게송을 적게 한다. 한 수가 아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無臺 佛性常清淨 何處有塵埃
보리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다. 불성은 늘 깨끗하니 어디에 티끌이 있겠는가.
그리고 또 한 수를 붙인다.
心是菩提樹 身為明鏡臺 明鏡本清淨 何處染塵埃
마음이 보리수요 몸이 밝은 거울의 받침대다.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니 어디에 티끌이 물들겠는가.
둘째 게송은 신수의 몸과 마음을 자리만 바꿔 받는다. 첫째 게송은 신수가 세운 나무와 받침대를 치운 다음, 그 빈자리에 불성을 놓는다. 두 수 모두 마지막을 떠받치는 말은 깨끗함, 곧 청정이다.
이 사본에는 오자가 많다. 첫째 게송의 셋째 구는 사본에 「佛姓常青淨」으로 적혀 있다. 대정신수대장경은 이 글자를 그대로 옮겼고, 전자불전 CBETA가 「性」과 「清」으로 바로잡았다. 그래서 돈황본은 교감을 거쳐 읽는다.
어디에도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말은 없다.
한 물건이 들어온 자리
그 구절은 다음 세대의 판본에서 나타난다. 혜흔(惠昕)이 단경을 두 권 열한 문으로 다시 나눈 혜흔본이다. 서문에 그는 옛 판본은 글이 번잡해 읽는 사람이 처음엔 기뻐하다 나중엔 싫증을 낸다고 적었다. 작업한 해는 정묘년이라고만 했고, 이 해를 보통 967년으로 본다. 송나라 때 다시 새긴 판이 일본 흥성사에 전해져 지금 읽을 수 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
보리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어디에 티끌이 있겠는가.
두 수가 한 수로 줄었다. 「亦無臺」는 「亦非臺」가 되었고, 불성이 있던 셋째 구에 한 물건도 없다는 말이 들어섰다. 마지막 구는 아직 돈황본과 같이 「有」다.
지금 가장 널리 읽히는 꼴은 원나라 때 완성된다. 풍번보은광효사의 주지 종보(宗寶)가 「세 판본이 서로 같지 않아 얻고 잃은 것이 있다」며 틀린 것은 바로잡고 줄어든 것은 늘려 엮은 판으로, 발문에 지원 신묘년, 곧 1291년이라 적었다. 대장경 2008번 『육조대사법보단경』이다. 여기서 혜능의 게송은 「何處惹塵埃」로 끝나고 신수의 게송도 「勿使惹塵埃」로 바뀐다.
신수 게송의 마지막 구만 따로 놓으면 돈황본의 「莫使有塵埃」, 혜흔본의 「莫使染塵埃」, 종보본의 「勿使惹塵埃」로 판본마다 한 글자씩 움직인다. 혜능 게송의 마지막 구는 「有」에서 「惹」로 간다. 티끌이 있느냐를 묻던 말이 티끌을 끌어들이느냐를 묻는 말로 옮겨 간 것이다.
다만 이 구절이 혜흔의 손에서 처음 지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배휴(裴休)가 엮은 황벽 희운(黃檗希運)의 어록 『완릉록』에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가 이미 인용되고, 본래 한 물건도 없다면 없는 것이 곧 옳으냐고 묻는 문답까지 있다. 배휴가 황벽의 또 다른 어록 『전심법요』에 서문을 단 것이 857년이다. 그러나 대장경에 실린 『완릉록』의 저본은 명나라 판본이어서, 이것을 9세기의 증거로 그대로 쓰는 데도 조심이 필요하다.
판본마다 다른 것은 게송만이 아니다. 종보본과 혜흔본에서 혜능은 홍인에게 금강경을 듣다가 「응무소주이생기심」,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구절에서 크게 깨닫는다. 돈황본에서는 홍인이 금강경을 설하자 혜능이 듣는 즉시 깨달았다고만 할 뿐 어느 구절인지 적지 않는다. 금강경의 그 한 구절이 혜능의 이야기에 붙은 것도 판본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있음의 말과 없음의 말
불성은 늘 깨끗하다는 말과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말은 같은 자리를 다른 방향에서 가리킨다. 앞의 것은 깨끗한 무엇이 있다고 말하고, 뒤의 것은 무엇이라 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신수가 거울을 닦으라 했을 때 돈황본의 혜능은 거울이 본래 깨끗하다고 답하고, 종보본의 혜능은 거울이라 할 것조차 없다고 답한다. 앞은 여래장과 불성의 언어에 가깝고, 뒤는 반야와 공(空)의 언어에 가깝다.
어느 쪽이 혜능의 뜻인가를 두고 연구자들의 판단은 갈린다. 중국의 불교학자 두계문(杜繼文)은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명제가 황벽 희운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였고, 황벽이 육조의 게송으로 자기 주장을 증명했으며, 그 구절이 마침 돈황본의 「佛性常清淨」을 대신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 구절을 혜흔이 함부로 끼워 넣은 것으로 보지 않고, 선종 안의 갈래가 서로 다른 단경을 전한 흔적으로 읽는다.
단경이 고쳐지고 있다는 불평은 당나라 때부터 있었다. 『경덕전등록』 권28에 실린 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의 말이다.
把他壇經改換 添糅鄙譚 削除聖意 惑亂後徒
저 단경을 가져다 고쳐 바꾸고, 천한 말을 섞어 넣고 성인의 뜻을 깎아 내어 뒷사람들을 어지럽힌다.
혜충은 남방의 어떤 무리가 단경을 제 뜻대로 바꾸고 있다고 보았다. 돈황본이 나오기 전부터 단경은 여러 손을 거치는 책이었다.
남쪽의 혜능, 북쪽의 신수
돈황본의 뒷부분은 스스로 남과 북을 말한다.
世人盡傳南宗能北宗秀 未知根本事由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남종의 혜능, 북종의 신수라고 전하지만 근본 사정은 알지 못한다.
이어지는 설명은 이렇다. 신수는 형주 강릉부 당양현 옥천사에 머물고 혜능은 소주 성 동쪽 35리 조계산에 머물렀으니, 법은 한 종인데 사람이 남북에 있어 남북이 세워졌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고 사람에게 영리함과 둔함이 있어 점과 돈이라 이름했다. 단경은 남과 북을 지역의 차이로, 돈과 점을 근기의 차이로 돌린다.
그러나 남쪽은 단박에 깨닫고 북쪽은 차츰 닦는다는 남돈북점의 구도는 이 책 밖에서 날카로워졌다. 혜능의 제자 하택 신회(荷澤神會)가 730년대 활대 대운사의 무차대회에서 신수의 제자들을 달마의 방계라 공격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점교라 불렀다. 북종이라는 이름부터가 신회가 상대를 낮추려고 붙인 말이라고 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신수 자신은 706년, 곧 신룡 2년에 낙양 천궁사에서 입적했다.
신회와 단경의 관계는 더 깊게 보는 학자들도 있다. 1920년대 파리와 런던의 돈황 문서에서 신회의 어록을 찾아낸 후스(胡適)는 단경의 상당 부분이 신회나 그 문하의 손에서 나왔다고 주장했고, 미국의 필립 얌폴스키도 신회 문하의 누군가가 단경을 지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대만의 인순(印順)은 1971년 『중국선종사』에서 단경의 본체는 대범사 설법이고 거기에 혜충이 비판한 남방 종지와 신회 계열의 단경 전수 이야기가 덧붙은 것이라고 보아 다른 길을 냈다.
등불과 빛
판본 문제를 걷어 내도 단경에는 판본과 상관없이 남는 가르침이 있다. 하나는 정(定)과 혜(慧)를 둘로 나누지 않는 것이다. 돈황본은 이렇게 말한다.
定惠體一不二 即定是惠體 即惠是定用
정과 혜는 체가 하나여서 둘이 아니다. 정이 곧 혜의 체이고 혜가 곧 정의 용이다.
먼저 정을 닦아 혜를 내거나 먼저 혜를 닦아 정을 낸다고 하면 법에 두 모양이 생긴다는 것이다. 혜능은 등불과 빛으로 비유한다. 등이 있으면 빛이 있고 등이 없으면 빛이 없다. 등은 빛의 체이고 빛은 등의 용이다. 이름은 둘이지만 체는 두 가지가 아니다. 고려의 지눌이 결사를 열며 쓴 글의 제목도 『권수정혜결사문』, 정과 혜를 함께 닦자는 권유다.
다른 하나는 무념(無念)이다.
我此法門 從上以來 頓漸皆立無念為宗 無相為體 無住為本
나의 이 법문은 예로부터 돈이든 점이든 모두 무념을 종으로, 무상을 체로, 무주를 근본으로 세웠다.
무념은 생각을 지우는 일로 오해되기 쉽다. 단경은 바로 그 오해를 막는다. 무념이란 생각하되 생각에 붙들리지 않는 것(於念而不念)이고, 온갖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해서 생각을 다 없애 버리면 그것은 도리어 법에 묶이는 것이라 했다. 앉아서 꼼짝 않고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보는 공부를 단경이 거듭 비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옳다면 유마힐이 숲속에 앉아 있던 사리불을 꾸짖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조계라는 이름
돈황본은 혜능이 머문 산을 물 수(氵) 변의 「漕溪」로 적는다. 뒷날의 판본들은 이것을 「曹溪」로 쓴다. 혜능이 이 산의 보림사에서 법을 크게 폈기에 조계는 곧 혜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조계」가 여기서 왔다.
한국에서 단경을 가장 깊이 받아들인 사람은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이다. 그는 창평 청원사에 머물 때 『육조단경』을 읽다가 첫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1207년 겨울에는 수선사의 담묵이 『법보기단경』을 다시 새기겠다며 발문을 청하자 기꺼이 응했다. 「육조법보단경발」에서 그는 이 책을 이렇게 부른다.
此予平生宗承修學之龜鑑也
이것은 내가 평생 받들어 배우고 닦아 온 거울이다.
같은 발문에서 지눌은 혜충의 비판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자신이 받은 판본에도 혜충이 꾸짖은 뜻으로 읽힐 만한 구절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진여의 성품이 스스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지 눈·귀·코·혀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대목이다. 지눌은 이것을 혜능이 천여 명의 출가자와 재가자를 함께 앞에 두고 듣는 사람에 맞춰 이끈 방편의 말로 풀었다. 그런데 눈·귀·코·혀를 드는 이 대목은 돈황본에는 없고 종보본에는 있다. 지눌이 1207년에 손에 든 단경은 이미 돈황본과 다른 판본이었다. 발문 끝에 그는 자기를 「해동 조계산 수선사 사문」이라 적었다.
한국이 읽은 판본
종보본보다 한 해 앞서 몽산 덕이(蒙山德異, 1231~1308)가 엮은 판이 있다. 대장경에 실린 종보본 앞에도 그의 서문이 붙어 있는데, 지원 27년, 곧 1290년에 쓴 서문에서 덕이는 단경이 뒷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줄여져 육조의 온전한 뜻을 볼 수 없다고 한탄하고, 어려서 본 옛 판본을 30여 년 찾아 헤맨 끝에 전문을 얻었다고 적는다. 혜흔은 번잡하다며 줄였고, 덕이와 종보는 줄었다며 늘렸다.
한국에 자리 잡은 것은 이 덕이본이다. 수선사 제10대 조사 혜감국사 만항(萬恒)이 1300년 강화 선원사에서 덕이본을 간행했고, 사천 백천사에 전하는 그 판본은 우리나라 최초의 덕이본 간행본으로 2020년 보물이 되었다. 이 뒤로 조선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공부된 단경은 주로 덕이본이다. 1496년(연산군 2)에는 인수대비의 뜻에 따라 학조가 덕이본을 우리말로 옮긴 『육조법보단경언해』 3권이 나왔다.
지금 읽는 사람에게
단경을 펼 때 어느 판본인지부터 확인하면 읽기가 달라진다. 같은 혜능이 돈황본에서는 불성이 늘 깨끗하다고 말하고, 혜흔본과 종보본에서는 한 물건도 없다고 말한다. 신수의 게송도 판본마다 마지막 한 글자가 다르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면 그 없음은 무엇이냐는 물음은 『완릉록』에서 이미 나왔다. 황벽은 없음 또한 옳지 않다고 답했다. 그런 물음을 한 글자로 쥐고 앉는 수행이 간화선이고, 혜능이 나무를 팔다 듣고 황매로 떠났다는 경을 다섯 사람이 나란히 풀어 놓은 책이 금강경 오가해다. 서방에 나기를 원하는 이들을 두고 혜능이 한 대답은 염불 글에서 따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