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는 없다고 답했다
천 년 가까이 한국 선방이 들어 온 화두 하나. 간화선이 무엇이고 무자 화두가 왜 풀리지 않도록 만들어졌는지, 대혜와 묵조선의 갈림길, 참구를 망치는 열 가지 병, 그리고 처음 앉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까지.
간화선이란 무엇인가
간화선(看話禪)은 화두를 보는 선이다. 볼 간(看), 말씀 화(話). 여기서 화(話)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간 짧은 문답을 가리키고, 그 문답 전체를 공안(公案)이라 부르며, 그중 참구자가 붙들고 늘어지는 핵심 대목을 화두(話頭)라 한다. 공안이 이야기라면 화두는 그 이야기가 남긴 한 덩어리의 물음이다.
한국 불교에서 이것은 하나의 유파가 아니라 주류다. 대한불교조계종의 공식 수행법이 간화선이고, 전국 선원에서 안거 때마다 수백 명의 스님이 각자의 화두를 들고 앉는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이 수행은 기이하다. 앉아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화두를 든다"고 답하고, 그 화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개는 답하지 않는다. 답을 말해 버리면 그것은 이미 화두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주의 무 한 글자
가장 널리 참구되어 온 화두는 한 글자다. 남송의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가 1228년에 옛 문답 마흔여덟 칙을 모아 엮은 『무문관(無門關)』은 그 첫 칙을 이렇게 시작한다.
趙州和尚 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조주화상 인승문 구자환유불성야무 주운 무
조주 화상에게 한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가 말했다. "없다."
조주(趙州從諗, 778~897)는 백이십 세를 살았다고 전해지는 당말의 선승이고, 그의 어록인 『조주록』은 오백여 문답을 담아 최초의 공안집으로 꼽힌다. 그 많은 문답 가운데 이 하나가 공안 중의 공안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열반경』은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곧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대승의 근본 명제이며 조주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그는 없다고 답했다. 경전과 조사의 말이 정면으로 어긋나는 자리, 그 어긋남이 이 화두의 전부다. 같은 어긋남을 경전 쪽에서 끝까지 따라 읽어 푸는 길도 있었다. 천태가 택한 쪽은 법화문구에 있다. 한국에서 오래 전해져 온 물음의 형식도 이 지점을 정확히 겨눈다. 부처님은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 하셨는데 조주는 무엇을 인하여 없다 하였는가.
여기서 첫 번째이자 가장 흔한 오해가 생긴다. 조주의 무를 있고 없음의 없음으로 읽는 것이다. 그렇게 읽는 순간 이 문답은 교리 문제가 되고, 교리 문제에는 정답이 있으며, 정답이 있는 물음은 화두가 아니다. 조주의 무는 유(有)의 반대말이 아니라 유와 무라는 짝 자체를 무너뜨리는 자리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이 화두는 생각으로 풀리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풀리지 않는 것이 결함이 아니라 기능이다.
답이 아니라 의심이 목적이다
간화선을 처음 접하면 화두를 수수께끼로 여기기 쉽다. 기발한 해석을 내놓으면 통과하는 시험처럼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화두 참구의 목적은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키우는 것이다.
전통은 이 수행에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근(大信根), 대분지(大憤志), 대의정(大疑情). 서산 휴정의 『선가귀감』을 비롯한 여러 지침서가 이 셋을 나란히 든다.
대신근은 큰 믿음이다. 화두 자체와 그것을 건네준 스승을 믿는 것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자기에게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일이다. 대분지는 물러서지 않는 의지다. 대의정은 의심 덩어리다. 화두를 오래 들고 있으면 의심이 흩어지지 않고 뭉쳐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데, 이것을 의단(疑團)이라 하고 그 덩어리 하나만 앞에 드러나 있는 상태를 의단독로(疑團獨露)라 한다.
이 상태를 전통은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힌 것에 비유한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다. 아는 것으로는 넘을 수 없고, 그렇다고 놓아 버릴 수도 없다. 간화선은 사람을 일부러 그 자리로 몰아넣는 수행이다. 지적인 능력이 도움이 되지 않는 지점까지 밀어붙여야, 그 능력에 기대어 살아온 방식 자체가 한 번 무너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혜와 묵조선의 갈림길
이 방법이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은 12세기 중국에서다. 오조법연과 원오극근을 거쳐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 이르러 체계가 완성되었다.
대혜의 시대에는 다른 흐름이 있었다.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의 묵조선(默照禪)이다. 묵묵히 앉아 본래 갖추어진 밝음이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수행으로, 특별히 무엇을 들지 않는다. 대혜는 이것을 사선(邪禪)이라고까지 부르며 비판했다. 아무것도 붙들지 않고 앉아 있으면 고요함에 만족해 버리기 쉽고, 그 고요함은 깨달음이 아니라 무기(無記), 곧 멍한 상태라는 것이다. 묵조 쪽에서는 되받아쳤다. 화두를 들고 씨름하는 것이야말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구두선(口頭禪)이라고.
대혜가 정좌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짚어 둘 만하다. 그의 편지들을 보면 앉는 것은 오히려 권장된다. 그가 반대한 것은 앉는 것 자체를 도착점으로 삼는 태도였다. 앉되 그 위에서 화두를 든다. 간화선에서 좌선은 목적이 아니라 화두를 놓치지 않기 위한 자리다.
대혜에게는 스승 원오극근이 지은 『벽암록』의 판목을 불태웠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이야기가 오래 회자된 이유는 분명하다. 뛰어난 선어(禪語)의 모음집이 수행자들에게 외워 쓰는 문장 창고가 되어 가는 것을 그가 위험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말이 수행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그 말이 아무리 훌륭해도 장애가 된다. 경을 푸는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한 사람도 있다. 임제종 6세인 야보 도천이 금강경 구절마다 한마디를 던져 설명을 끊어 놓은 것이 금강경 오가해에 실려 있다.
참구를 망치는 열 가지 병
간화선 전통에는 화두를 잘못 드는 방식의 목록이 있다. 십종병(十種病)이다. 대혜가 여덟 가지를 들었고, 고려의 지눌이 두 가지를 더해 열이 되었다. 진각혜심(1178~1234)은 1215년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을 지어 무자 화두 하나를 놓고 이 병들을 조목조목 다루었다. 제목 그대로 조주 무자 화두의 병통을 가려내는 글이다.
열 가지를 한 줄씩 외울 필요는 없다. 몇 가지만 보아도 공통점이 드러난다.
있다 없다의 없음으로 헤아리는 것. 이치를 세워 도리로 풀려는 것. 말길을 따라가 그럴듯한 답을 짓는 것. 문자를 끌어와 증거로 삼는 것. 아무 일 없는 고요함에 눌러앉는 것. 미혹한 채로 깨달음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이 여섯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하나의 동작이다. 화두를 자기 앞에 놓인 대상으로 만들어 처리하려는 것. 해석하든, 증명하든, 기다리든, 화두를 다루는 주체가 따로 남아 있는 한 참구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 목록의 요지다.
실제 수행에서 특히 경계되는 것은 조급함이다. 빨리 뚫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면 힘이 위로 몰려 두통과 답답함으로 나타나는데, 선방에서는 이것을 상기병(上氣病)이라 부른다. 몸에 오는 병이지만 원인은 마음의 조급함이다. 깨달음을 목표로 세우는 순간 화두는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고, 수단이 된 화두는 더 이상 의심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한국의 간화선
간화선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고려 무신정권기다.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이 대혜의 저작을 통해 이 수행법을 받아들여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지었고, 제자 진각혜심이 정착시켰다. 혜심은 1226년 공안 천백스물다섯 칙을 모은 『선문염송집』을 엮어 참구할 화두의 목록을 마련했다. 이 초간본은 몽골 침입으로 소실되어 1244년에 삼백여 칙을 더해 다시 새겼다.
이후 태고보우를 거쳐 조선의 서산 휴정이 『선가귀감』으로 수행의 요체를 정리했고, 조선 후기에 침체했던 선풍은 근대에 경허와 그 문하의 만공, 혜월 등에 의해 되살아났다. 오늘날 조계종의 선원 체계는 이 계보 위에 서 있다.
수행의 리듬은 안거(安居)로 짜여 있다.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시작해 7월 15일에 끝나고,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시작해 이듬해 1월 15일에 끝난다. 시작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우기에 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머물던 인도의 오랜 관습에서 온 제도가 계절이 다른 땅에서도 석 달의 집중 수행 기간으로 남았다.
처음 앉는 사람에게
간화선은 원칙적으로 스승에게 화두를 받아 시작하고, 참구의 상태를 점검받으며 나아간다. 혼자 책을 보고 화두를 골라 드는 것은 전통이 권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럼에도 앉는 일 자체는 지금 시작할 수 있다.
자세부터 말하면, 결가부좌가 어려우면 반가부좌로, 그것도 어려우면 의자에 앉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허리를 세우고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자세를 찾는 것이다. 눈은 완전히 감지 않고 한두 걸음 앞 바닥에 반쯤 둔다. 감으면 졸음이 오고, 크게 뜨면 산만해진다.
시간은 짧게 자주가 낫다. 하루에 십 분씩 매일 앉는 편이 주말에 한 시간씩 앉는 것보다 낫다. 좌선 중에 다리가 저리거나 생각이 밀려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기본값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위의 열 가지 병이 이미 말해 준다. 짧게 줄이면 이렇다. 화두를 해석하지 말 것. 깨달음을 목표로 삼지 말 것. 고요함을 성과로 착각하지 말 것. 그리고 몸에 무리가 오면 멈출 것.
왜 이 수행이 남았는가
간화선은 천 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이해를 쌓는 대신 이해가 닿지 않는 자리로 사람을 몰아붙이는, 효율과는 거리가 먼 방법이다. 그런데도 남은 이유는 이 수행이 겨냥하는 것이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정보를 찾고, 설명을 얻고, 정리해서 안다고 말한다.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 문제 앞에서도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화두는 그 동작이 헛도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만드는 장치다. 조주가 없다고 답한 자리에서 아무리 좋은 해석을 내놓아도 의심은 풀리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채로 남아 커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공(空)이 실체 없음을 논증으로 보였다면, 간화선은 같은 자리를 논증 없이 부딪쳐 보게 한다. 그래서 이 수행에는 요약이 없다. 요약할 수 있다면 애초에 화두일 이유가 없다.
선(禪) 원문 자료를 더 읽고 싶다면 불교 문헌 아카이브의 선불교 분류에 오천구백여 편이 있다. 간화선, 화두, 조주로 검색하면 전통 어록과 근현대 선사들의 법문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