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지 않은 비밀
주술도 비법도 아닌 밀교 입문. 공해가 현교와 밀교를 가른 기준, 비밀에 두 가지 뜻이 있다는 말, 대일경의 세 구절,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삼밀 수행, 두 만다라, 그리고 명랑에서 진각종까지 이어진 한국의 밀교.
이미 듣고 있는 밀교
밀교(密敎)라는 이름은 대개 엉뚱한 그림을 불러온다. 문을 걸어 잠그고 전하는 비법,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 혹은 서양에서 건너온 탄트라라는 말에 붙은 묘한 인상. 비밀스러운 가르침이라니 무언가 감추어져 있을 것이고, 감추어진 것은 대개 수상하다.
그런데 한국 절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밀교를 이미 들었다. 예불과 의식에서 늘 독송하는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가 그렇고, 반야심경을 끝맺는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그렇고, 염주를 돌리며 외는 옴 마니 반메 훔이 그렇다. 뜻을 옮기지 않고 소리 그대로 외는 이 말들을 진언(眞言), 길게 이어지면 다라니(陀羅尼)라 부른다. 진언은 밀교 수행의 한 축이다. 한국 불교는 선종이 주류이지만, 그 일상 의례의 상당 부분은 밀교에서 왔다. 소리로 하는 또 하나의 일상 수행인 염불과 함께, 진언은 한국 절의 귀를 채워 왔다.
그러니 밀교는 바깥에 있는 낯선 종파라기보다 늘 곁에 있었는데 이름을 몰랐던 것에 가깝다. 이름을 알려면 먼저 비밀이라는 말을 바로 읽어야 한다.
공해가 가른 두 가르침
밀교와 그 밖의 불교를 가장 날카롭게 갈라 본 사람은 일본 진언종을 연 공해(空海, 774~835)다. 그는 『변현밀이교론(辨顯密二教論)』을 이렇게 시작한다.
夫佛有三身 教則二種 應化開說名曰顯教 言顯略逗機 法佛談話謂之密藏 言祕奧實說
부처에게는 세 몸이 있고 가르침은 두 가지다. 응신과 화신이 열어 설한 것을 현교(顯敎)라 하니, 말이 드러나 있고 간추려져 있으며 듣는 이의 근기에 맞춘다. 법신불이 하는 말을 밀장(密藏)이라 하니, 말이 깊고 그윽하며 실상 그대로 설한다.
여기서 기준은 내용의 수준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이다. 역사 속의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한 설법은 듣는 사람에 맞춰 고른 말이다. 병에 따라 약을 짓듯,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만 꺼내고 나머지는 접어 둔다. 그래서 현교의 말은 친절하지만 언제나 줄인 말이다. 반면 밀교는 진리 자체인 법신이 누구에게 맞추지 않고 제 깨달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을 가리킨다. 공해는 이것을 법신이 스스로 법의 즐거움을 누리며 하는 설법, 곧 자수법락(自受法樂)이라 불렀다.
다른 종파는 대체로 법신은 형체도 말도 없다고 보았다. 말이 끊어진 자리가 법신이라는 것이다. 공해는 거기에 반대했다. 법신도 말한다, 다만 그 말은 문장이 아니라 몸과 소리와 마음 전체로 하는 말이라고.
비밀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렇다면 법신의 말은 왜 비밀인가. 공해는 같은 책 끝에서 이 물음에 직접 답한다.
所謂祕密且有二義 一衆生祕密 二如來祕密 衆生以無明妄想覆藏本性眞覺 故曰衆生自祕
이른바 비밀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중생의 비밀이고 둘째는 여래의 비밀이다. 중생은 무명과 망상으로 본래 지닌 참된 깨달음을 덮어 감추니, 이를 중생이 스스로 감춘 것이라 한다.
여래의 비밀은 앞서 본 현교의 사정이다. 근기에 맞춰 약을 주는 부처는 듣는 이가 감당할 수 없는 자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은 여래 쪽에서 아직 꺼내지 않은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첫째 뜻이다. 중생의 비밀은 누가 숨긴 것이 아니다. 비법을 쥔 스승이 문을 잠근 것도 아니고 경전이 일부러 말을 흐린 것도 아니다. 깨달음은 처음부터 각자에게 있었고, 그것을 덮은 것은 자기 자신의 무명이다. 공해가 쓴 말 그대로 자비(自祕), 스스로 감춘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밀교라는 이름의 무게 중심이 옮겨 간다. 비밀은 바깥 어딘가에 잠겨 있는 정보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데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느냐는 물음은 처음부터 방향이 틀렸다. 밀교는 감추어진 것을 전해 주는 가르침이 아니라, 아무도 감추지 않은 것을 덮고 있는 손을 치우는 수행이다.
대일경의 세 구절
밀교가 하나의 독립된 체계로 서는 것은 7세기 인도에서 두 경전이 성립하면서다. 하나가 『대일경(大日經)』, 정식 이름으로는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이다. 인도 승려 선무외(善無畏, 637~735)가 당에 와서 제자 일행(一行)과 함께 720년대에 한문으로 옮겼다.
경의 첫 품인 「주심품(住心品)」에서 비밀주(祕密主)라 불리는 금강수보살이 깨달음의 원인과 근본과 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부처는 이렇게 답한다.
佛言 菩提心為因 悲為根本 方便為究竟 祕密主 云何菩提 謂如實知自心
부처가 말했다. 보리심이 원인이고, 자비가 근본이며, 방편이 궁극이다. 비밀주여, 무엇이 깨달음인가.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앞의 세 구절은 삼구법문(三句法門)이라 불리며 밀교 전체의 요약으로 읽힌다. 깨닫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하고, 그 마음은 남의 괴로움을 아파하는 데 뿌리를 두며, 끝은 고요한 경지가 아니라 중생 곁에서 쓰이는 수단이다. 깨달음이 도착점이 아니라 쓰임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이 구절은 대승의 보살 이상을 가장 짧게 줄인 말이기도 하다.
뒤의 한 구절은 공해의 두 비밀과 정확히 맞물린다. 비밀을 묻는 자의 이름이 비밀의 주인인데, 부처의 대답은 바깥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다. 깨달음이 자기 마음을 그대로 아는 것이라면, 그것을 덮은 것도 자기 마음뿐이다.
삼밀, 부처의 몸짓을 빌리다
밀교 수행이 다른 불교와 가장 눈에 띄게 다른 지점은 방법이다. 불교는 사람의 행위를 몸과 입과 뜻의 세 업(三業)으로 나눈다. 밀교는 부처에게도 같은 세 가지가 있다고 보고 이를 삼밀(三密)이라 부른다. 부처의 몸, 부처의 말, 부처의 마음이다.
수행은 이 셋을 맞추는 일이다. 손으로는 부처의 손 모양인 인계(印契)를 맺고, 입으로는 진언을 외고, 마음으로는 본존의 모습이나 그 근원을 뜻하는 범자를 관한다. 몸과 말과 뜻이 동시에 부처의 그것과 겹칠 때, 범부의 삼업이 그대로 삼밀이 된다고 본다.
공해는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에서 이 원리를 네 구절로 압축했다.
六大無礙常瑜伽 四種曼荼各不離 三密加持速疾顯 重重帝網名卽身
여섯 요소는 걸림 없이 늘 서로 응한다. 네 가지 만다라는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삼밀이 가지하면 빠르게 드러난다. 겹겹이 얽힌 제석천의 그물을 이 몸이라 한다.
셋째 구절의 가지(加持)를 공해는 바로 이어 풀었다. 부처의 해가 중생의 마음 물에 비치는 것이 가(加)이고, 수행자의 마음 물이 그 햇빛을 느껴 받는 것이 지(持)다. 부처의 자비와 수행자의 믿음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물이 흐리면 해가 떠 있어도 비치지 않는다. 다시 공해의 첫째 비밀로 돌아온다.
넷째 구절의 제석천 그물에 대해서는 공해 자신이 인드라의 구슬 그물이라고 주를 달았다. 화엄경의 인드라망이다. 나의 몸과 부처의 몸과 중생의 몸이 구슬처럼 서로를 비추며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해는 깨달음을 이 몸 그대로 이룬다고 했다. 즉신성불(卽身成佛)이다. 삼대겁의 수행 끝에 다른 몸이 되어서가 아니라.
여기서 선과 밀교가 갈린다. 간화선은 화두 하나로 사람을 생각이 닿지 않는 자리까지 몰아붙여 개념의 그물을 찢는다. 밀교는 반대 방향에서 들어간다. 형식을 버리는 대신 깨달은 자의 형식을 먼저 입는다. 손 모양과 소리와 이미지라는 가장 구체적인 것을 통해, 그 형식이 원래 자기 것이었음을 확인하는 길이다. 결과를 원인으로 삼는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남방의 위빠사나는 또 다른 방향이다. 아무것도 보태지도 버리지도 않고, 이미 일어나고 있는 숨과 감각을 놓치지 않고 본다.
두 만다라
삼밀 수행이 어디서 이루어지는지를 그린 것이 만다라(曼茶羅)다. 흔히 둥글고 화려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림 이전에 배치다. 깨달음의 세계를 이루는 부처와 보살을 정해진 자리에 앉힌 지도이고, 수행자는 그 지도 안으로 들어가 자기 자리를 찾는다.
동아시아 밀교에는 두 만다라가 짝을 이룬다. 『대일경』에 근거한 태장계(胎藏界) 만다라는 어머니 태 안에서 생명이 자라듯 자비가 모든 것을 품어 기르는 모습을 그린다. 다른 하나는 7세기 후반 성립한 『금강정경(金剛頂經)』에 근거한 금강계(金剛界) 만다라로, 깨지지 않는 지혜가 번뇌를 끊는 모습을 그린다. 『금강정경』은 금강지(金剛智, 671741)와 그 제자 불공(不空, 705774)이 당에 전했다.
두 계통은 처음에 따로 전해졌으나 불공의 제자 혜과(惠果, 746~805)에 이르러 한 사람 안에서 합쳐졌다. 805년 혜과는 당에 유학 온 공해에게 두 계통을 모두 전했고, 공해는 이듬해 일본으로 돌아가 진언종을 열었다. 자비와 지혜, 품는 것과 끊는 것이 둘이 아니라는 사상이 두 장의 그림으로 나란히 걸린 셈이다.
인도의 밀교는 이후에도 계속 발전했고, 그 후기 단계가 티베트로 건너가 또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었다. 서양에서 탄트라라는 말에 붙은 인상의 상당 부분은 이 후기 밀교의 상징을 맥락 없이 읽은 데서 왔다. 동아시아에 들어온 밀교는 그보다 앞선 단계, 곧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밀교다.
한국의 밀교
신라에도 밀교는 일찍 들어왔다. 『삼국유사』는 문무왕 때 당의 군대가 바다로 쳐들어오자 명랑(明朗)이 채색 비단으로 임시 절을 짓고 풀로 오방신상을 만든 뒤, 유가승(瑜伽僧) 열둘의 우두머리가 되어 문두루(文豆婁) 비법을 행하니 풍랑이 일어 당의 배가 모두 가라앉았다고 전한다. 그 자리에 다시 지은 절이 사천왕사이고, 『삼국유사』가 인용한 국사는 그 개창을 조로 원년(679)으로 적는다. 명랑의 계통은 뒤에 신인종(神印宗)으로 불렸다.
이 이야기는 밀교가 한반도에서 처음부터 호국과 재난을 물리치는 의례의 얼굴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준다. 그것이 한국 밀교의 한 성격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얼굴도 있었다. 『왕오천축국전』으로 알려진 신라 승려 혜초(慧超)는 장안에서 금강지의 문하에 들어가 밀교를 배웠고, 뒤에는 불공의 제자로 경전 번역에 참여했다. 순례자로 기억되는 혜초는 동시에 당 밀교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이다.
고려를 지나며 총지종과 신인종이 밀교 종단으로 이어졌으나, 조선 초 종단이 통폐합되면서 밀교는 독립된 이름을 잃었다. 이름은 사라졌지만 진언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의 승려들은 진언을 모은 『진언집』을 거듭 간행했고, 천수경과 각종 의식문 속의 다라니가 오늘의 예불로 이어졌다. 처음에 말한, 이미 듣고 있는 밀교가 바로 이 흔적이다.
근대에 와서 밀교는 다시 이름을 얻었다. 1947년 회당 손규상(1902~1963)이 대구에서 대한불교진각종을 열었다. 진각종은 옴 마니 반메 훔, 육자진언을 염송의 중심에 두고, 불상 대신 육자진언을 모신 심인당(心印堂)에서 수행한다. 육자진언 자체는 송대에 천식재(天息災)가 옮긴 『대승장엄보왕경』에서 관세음보살의 진언으로 설해진 것이다.
처음 다가가는 사람에게
밀교는 원칙적으로 스승에게서 관정(灌頂)을 받고 시작하는 수행이다. 인계와 관법은 스승의 지도 아래 차례대로 배운다. 책을 보고 혼자 만다라를 그리거나 인계를 흉내 내는 것은 전통이 권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래도 이미 열려 있는 문은 있다. 천수경의 다라니나 육자진언은 한국 절 어디서나 함께 외는 것이고, 누구에게도 금지되어 있지 않다. 뜻을 다 알지 못하는 소리를 고르게 반복하면 흩어지던 생각이 그 소리에 실려 가라앉는다. 처음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만 경계하면 된다. 진언을 소원을 넣으면 결과가 나오는 기계로 대하는 것이다. 진언을 많이 외면 무엇을 얻는다는 식의 계산은 밀교가 가장 흔하게 오해받는 지점이고, 『대일경』의 세 구절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출발점은 얻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깨달으려는 마음이고, 뿌리는 자비이며, 끝은 쓰임이다.
감추지 않은 비밀
밀교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은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누가 그것을 알고 있고, 어떻게 하면 전해 받을 수 있는지. 공해의 답은 그 물음의 방향을 뒤집는다. 비밀의 첫째 뜻은 중생이 스스로 감춘 것이고, 『대일경』은 깨달음을 자기 마음을 그대로 아는 것이라 했다. 찾는 것이 이미 찾는 자 안에 있다면, 비밀은 정보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다.
그래서 밀교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손과 입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해를 쌓아 거기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인 것처럼 행하면서 그것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길이다. 아무도 감추지 않은 것을 덮고 있던 손이 자기 손이었음을 아는 것, 밀교가 비밀이라 부른 것은 그것이다.